농구 몰라도 재밌는 극장판 슬램덩크
3040 세대가 슬램덩크 극장판에 열광하고 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어떤 만화 작가님은 벌써 30번 이상 관람했다고도 합니다. 일본 만화인 슬램덩크는 1994년에 국내에서 비디오로 출시되었고, 만화책은 이보다 이전인 1991년에 1권이 발매되어 1996년에 완결이 났습니다. 1990년생인 저는 슬램덩크의 명성과 추억이 그렇게까지 와닿지는 않았는데요. 어릴 적에 스포츠 애니에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워낙 명작이라는 평가가 많다 보니, 결국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보고 왔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슬램덩크는 농구 규칙을 잘 몰라도, 원작 만화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스포츠를 보고 가슴 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를 봐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 분께는 비추천합니다. 작품은 2D 그림체지만 3D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움직임이 많은 농구 경기 장면을 전부 고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으로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듯합니다. 이 3D의 느낌이 초반에는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노우에 타케히코 작가의 그림체를 잘 표현해서 감상에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백호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소연이는 굉장히 예쁜 캐릭터라고 알고 있었는데 비중도 작고 못생겨져서 못 알아보았네요. 만화 원작에는 강백호의 고백 씬이 있었지만 극장판에서는 잘렸다고 하는 것을 보니 이번 영화에서 러브라인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처럼 슬램덩크 극장판은 스포츠 소년만화라는 본연의 장르 자체에 집중하고,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만화에서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극적으로 연출해 냈습니다. 그러니 우선 극장판을 보신 후,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의 장면을 비교해 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합니다.
극장판 슬램덩크 주인공은 송태섭
극장판 슬램덩크는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어린 시절부터 성장 과정을 보여줍니다. 제목의 '더 퍼스트'는 1번 포인트가드인 송태섭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저처럼 슬램덩크를 주워들어 아는 사람들이라면 강백호, 서태웅, 채치수 정도만 알고 그 외 인물은 잘 모를 수도 있는데요. 사실 송태섭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브로콜리 머리를 한 키 작은 선수'에 불과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에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도 애정이 갔습니다. 극장판 주인공은 송태섭이지만 원작의 경기 내용은 그대로 진행되었기에 강백호의 활약상이나 정대만의 투혼, 서태웅과 정우성의 대결 구도 등 다른 선수들의 서사도 골고루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 스토리를 모르는 상태에서 보면 이해가 안 가는 장면도 제법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대만이 다른 선수들과 달리 유독 힘들어하는지에 대해서, 원작을 모른다면 이해가 안 갈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먼저 원작 만화를 정주행 하신 후 극장판을 보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합니다.
슬램덩크 더빙판 감상 후기
저는 영화관 근처에 간 김에 충동적으로 슬램덩크를 보러 갔던 터라 더빙과 자막 중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대에는 더빙밖에 없더군요. 더빙판의 주요 성우는 송태섭(엄상현), 강백호(강수진), 채치수(최낙윤), 서태웅(신용우), 정대만(장민혁) 등입니다. 저도 몇몇은 이름을 알 만큼 유명한 성우로 캐스팅한 듯합니다. 극장판을 보고난 후 궁금증이 일어 TV판도 보았는데요. TV판, 극장판 모두 강백호 역할은 강수진 성우가 맡았습니다만, 굳이 비교해 보자면 극장판의 백호가 더 구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태웅은 TV판에서 매 회마다(?) 성우가 바뀌는 것 같았는데요. 목소리가 다름에도 특유의 냉정하고 날카로운 말투는 한결같습니다. TV 애니메이션으로 슬램덩크를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강백호 외에는 성우가 바뀌어서 익숙함은 덜할 수 있겠습니다. 또 한 가지 느낀 점으로, 남자 캐릭터에 비해 채소연과 이한나 등 여자 캐릭터의 말투는 지금 보면 과장되고 예스러운 느낌이 든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어색한 것을 못 느꼈는데 세월이 많이 흘렀나 봅니다. 반면 2022년의 슬램덩크 성우들은 여자 캐릭터를 비롯해 1990년대에 비하면 담백한 연기톤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강백호만 살짝 90년대 느낌이라는 것! 외국 영화를 볼 때 자막판을 선호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생각보다 자막을 읽느라 영상 자체를 온전히 감상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영화는 모든 장면이 다 감독의 의도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자막을 읽는 데 급급하다 보면 미장센이나 영상미,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여유가 있다면 먼저 자막판을 보고, 더빙판을 한 번 더 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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